목회자의 방/영감있는 글 100

존 브라이트의 <하나님의 나라>, 295.

“새 하늘과 새 땅이 여기에 있다(21:1-4; 참조, 사 65:17-19); 하나님의 도성, 새 예루살렘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사람들 가운데 자리를 잡는다. 그 안에는 없어지지 않는 기쁨이 있다. 모든 슬픔과 모든 고통과 모든 악은 사라져 버렸다. 그것은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어휘로써는 표현할 수 없는 그런 기쁨이다. 어떤 보석도 그것을 밝힐 만큼 밝지 못하며 태양도 그 영광 옆에서는 빛이 바랜다! 기쁨은 언어가 더 이상 표현할 수 없을 때까지 점점 강한 언어로 쌓여 간다.” “그것은 역사의 마지막에 승리에 찬, 그리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이다. 그리고 그 눈에 보이지 않는 도성과 왕국을 향해 교회는 갈망의 눈을 돌리고 그리고 교회의 기도는 위를 향해 올라간다(계 22:20). ‘아멘 주 예수여 오시..

존 브라이트의 <하나님의 나라>, 288-89.

신약성서 안에는 가시적인 교회를 하나님 나라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없다. 그렇게 동일시하는 교회는 곧 하나님을 교회 자신의 인간적인 정책과 관습을 보증하도록 초청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백성을 자신의 특별한 신조를 고백하고 그 예배에 참여하는 모범적인 사람들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교회는 그 나라의 도래를 그 교회의 수적인 성장의 면에서 계산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신약의 교회가 될 수 없다! 그러한 동일시는 아모스 이래 예언자들이 우리에게 말해 온 것처럼 큰 함정이다. 그것은 외적인 복종으로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되었다는 어리석은 자만심을 키워줄 뿐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보호해 주실 것이라는  - 참으로 이것은 그의 교회이기 때문에! - 어리석은 기대감을 키워 줄 뿐이다.  그러나 신약성서는 그..

존 브라이트의 <하나님의 나라>, 189-90.

십자가 안에서 우리는 처음부터 줄곧 기독교 신앙의 주류에 속해 있다. (중략)  그 십자가를 향해서 우리는 구원을 찾는다. 그러나 그 십자가는 전혀 원치 않는다.  참으로 우리는 십자가들을 멀리 유지하는 것을 종교의 주요 기능으로 만들려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은 받으려 하지 않는 고난을 당할 그리스도를 원한다.  그 그리스도는 우리의 안락이 방해받지 않도록 자신을 낮추는 그리스도이다.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생명을 잃어야 한다는,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는 부름은 신비한 것으로 그리고 우리의 신경을 거슬리는 것으로 남아 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