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의 방/영감있는 글

R.A.토레이의 <성령론>, 54-56쪽 - 두 가지 기도

작은우리큰예수 2026. 2. 7. 01:37

이러한 이야기가 있다. 어느 충실한 스코틀랜드 목사가 스코틀랜드 전국을 여행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밤, 여관에 머무르고 있을 때 생긴 일이다. 여관 주인이 그 목사에게 와서 가정 예배를 인도하여 달라고 하였다. 그 목사는 말하기를 여관에 지금 들어 있는 모든 손님과 심부름하는 사람들까지 모두 예배에 참석하도록 한다면 예배를 인도하여 주겠노라고 하였다. 주인은 그렇게 하겠다고 동의하여 많은 사람들이 예배드리려고 큰 방으로 모여 들었을 때에 그 목사는 주인에게 여관 심부름꾼들도 한 사람 빠지지 않고 다 이곳에 모였느냐고 물어보았다. 주인은 , 다 모여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목사는 또 한 번 다짐하기를 분명히 다 모였느냐고 물어보니까 전부는 아닙니다. 오직 한 사람이 빠졌습니다. 그는 저 아래 부엌에서 냄비와 솥을 씻는 일을 하는 여자인데 물결이 더러워서 이곳에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라고 주인이 말하는 것이었다. 이때에 목사는 그 여자가 참석하기 전까지는 예배를 시작하지 못하겠노라고 하여 결국 주인이 그 하녀를 데리고 들어온 후에 예배를 드렸다.”

 

이 하나님의 신실한 종인 목사는 그 불쌍하고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있는 여종에게 큰 관심을 두었다. 예배가 끝나고 사람들이 방에서 나갈 때에 그 여종에게 잠깐 머물러 있을 수 없느냐고 물었다. 그러하여 다른 사람이 다 나간 후에 목사가 그 여자에게 말하기를 나는 당신에게 하나님께 드릴 기도를 가르쳐 주려고 합니다. 다른 말이 아니고 주여, 내 자신을 나에게 보여 주옵소서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기도를 날마다 드릴 수 있습니까?라고 말했을 때 그 여자는 그렇다고 대답하였다. 다음 날 목사는 그 여관에서 떠나갔다. 그 후 얼마 안 되어 그 목사가 여관으로 되돌아와서 그 하녀에 대한 사정을 주인에게 물었다. 그때 여관 주인이 대답하기를 그 여자는 아주 변했습니다. 도무지 쓸모가 없습니다. 밤낮으로 울기만 하고 제가 맡은 일도 변변히 못하고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목사는 그 하녀를 다시 한 번 만나보게 하여 달라고 청하여 그 여자를 만나 이제는 당신에게 다른 기도를 하나 가르쳐 주겠습니다. 그것은 주여, 주님을 나에게 보여 주옵소서라는 기도입니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 기도를 날마다 하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여관을 떠나갔다. 그 후 몇 해가 지나 그 목사는 어느 날 오전 예배에 글라스고에 있는 교회에서 설교를 하였다. 예배가 끝난 후에 한 깨끗하고 말쑥하게 옷차림을 한 젊은 여자가 그 목사에게 와서 목사님, 저를 아시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잘 모르겠다고 목사가 대답하니까 그 여자는 어느 여관에서 예배를 보고 난 후에 그 여관의 하녀에게 여러 가지로 말씀하시고 주여, 내 자신을 보여 주옵소서라는 기도와 주여, 주님을 보여 주옵소서라고 하는 기도를 날마다 드리라고 가르쳐 주신 일이 생각나지 않습니까라고 하였다. “, 그 일은 기억하고 있습니다라고 목사가 대답하니까 그 여자는 제가 바로 그 하녀입니다. 목사님이 저에게 그 처음 기도를 가르쳐 주시고 떠나가신 다음 저는 제 자신을 보여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였더니 하나님께서 나의 악함과 죄됨을 아주 분명히 보여 주셨으므로 나는 슬픔에 잠기어 내 죄에 대한 생각으로 인하여 밤에는 잠을 이룰 수가 없고 낮에는 일을 할 수가 없다시피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에 목사님이 다시 오셔서 저에게 둘째 기도인 주여, 당신을 보여 주옵소서라는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 기도를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신과 당신의 사랑과 또한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분명히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자 나의 모든 죄짐을 벗어 버리고 저는 행복스러운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누구나 다 알지 않으면 안 될 귀중한 사실이다. 첫째는 우리 자신의 죄인데 이 죄를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은 성령의 역사이다. 둘째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그리스도의 의와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나를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 마련해 두신 의이다. 이것도 또한 성령의 역사로 우리가 깨달아 알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