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꿈꾸는 교회 비전
'작은 우리, 큰 예수'의 목회 철학을 바탕으로 아래의 4가지 교회 비전을 교회의 성도님들과 공유코자 합니다.
1. 내면의 성숙과 치유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건강하게 사는 것도 좋습니다. 물질적 부유함 속에서 사는 것도 좋습니다. 자녀들이 성공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신앙의 일면일 뿐, 핵심은 아닙니다. 신앙의 핵심은 내면의 성숙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의 '성령의 열매'가 이를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바로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에게 요청되는 것은 첫째,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막8:34). 즉, 성령의 열매를 가로 막는 우리 내면의 죄성과 부단히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본성에 따라 죄를 쫓아가는 '작은 예수, 큰 나'의 삶의 아니라 예수님의 본성과 내면을 쫓아가는 '작은 나, 큰 예수'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둘째 성령의 열매를 거두기 위하여 우리 내면의 상처와 아픔이 치유되어야 합니다. 내면의 상처는 고스란히 타자에게 전달되기 마련입니다. 타자를 유익하게 하는 내면의 성숙을 위하여 치유와 회복은 마땅한 것입니다. 여기서도 마찬가집니다. '연약한 나는 결코 스스로를 치유할 수 없으며, 오직 예수님의 크신 사랑의 품이 나를 회복할 수 있다'는 '작은 나, 큰 예수'의 믿음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렇듯 '자기부인과 치유'를 통해 우리의 내면이 나날이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 기도의 능력
우리 그리스도인은 종말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종말의 때란,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시기를 의미하며, 이 때 사탄은 최후의 발악으로 온갖 악한 방법을 동원하여 그리스도인들을 영적으로 공격합니다(벧전 5:8). 사탄은 어떻게든 그리스도인의 영적 성장을 가로 막아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하도록 합니다. 우리 주변에 영적으로 패배한 개인과 가정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우리 자신과 가정의 신앙을 지키고, 교회의 순결함을 지키기 위하여 이 종말의 때에 사탄과의 영적인 싸움은 절대적입니다. 우리 교회는 기도에 매진할 것입니다. 하루에 1시간 기도할 수 있는 기도의 용사를 키워 내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기도하는 개인과 교회는 거룩함의 영광을, 그렇지 못한 개인과 교회는 쓰디쓴 영적 패배를 맛 볼 것입니다. 또한 기도는 근본적으로 하나님 아버지와의 인격적 교제의 통로입니다. 깊은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와의 깊은 교제를 낳습니다. 하나님의 선물보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먼저입니다. 하나님의 일보다 하나님과 교제가 먼저입니다. 우리 교회는 늘 기도를 강조하며 하나님과의 깊고도 친밀한 관계를 촉구할 것입니다.
3. 섬김
신앙 핵심의 또 다른 중요한 주제는 '섬김'입니다. 섬김은 타자의 필요를 채워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죄인인 우리에게 필요를 채워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바로 '구원'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무엇보다 예수님으로부터 섬김을 받은 존재인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 차례입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섬김을 타자에게 베푸는 것이 '작은 나, 큰 예수' 정신입니다. 무엇보다 전도와 선교가 중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한 영혼을 거듭나게 하는 것이야 말로 섬김 중의 섬김입니다. 건강한 교회를 세우는 것도 중요한 섬김입니다. 그 교회를 통해 참 신앙을 배우게 될 잠재적 성도들을 위함입니다. 또한 은사의 나눔이 중요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사가 있습니다. 그 은사를 사용하여 다른 성도의 필요를 채우는 것이 교회 공동체의 핵심입니다. 중보기도 또한 섬김의 중요한 일환입니다. 국가, 이웃, 가족, 성도 등을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것은 섬김의 아름다운 실천입니다. 또한 구제가 있습니다. 물질적으로 곤경한 처한 이웃에게 적절한 필요를 공급해 주는 것입니다. 각종 구호 활동도 중요한 섬김입니다. 자연 재해나 화재로 인해 재산과 가족을 잃은 이들을 가엾은 이웃들이 있습니다. 힘이 없어 당하는 각종 불이익으로 인해 신음하는 사회적 약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의 편에 서는 것도 섬김입니다. 또한, 탈북자들을 돕는 것도, 낯선 땅에서 고생하는 외국인 노동자 돕는 것도 섬김입니다. 가난한 개척교회를 돕는 것도 섬김입니다. 우리 주변 곳곳에 섬김이 필요한 많은 타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필요를 채우는 작은우리큰예수 교회이길 소망합니다.
4. 다음 세대
섬김의 중요한 대상 중 하나는 신앙의 다음세대입니다. 2023년 현재, 한국 교회는 다음 세대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저출산과 관련된 사회적인 문제, 교회를 향한 비판적 의식의 팽배 등과 맞물려 많은 젊은이들이 교회에 발 붙이기를 꺼려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간다면 머지 많은 교회는 백발의 노인들만 남게 될 것입니다. 아쉽게도 많은 교회들이 소위 '어른 성도'에게 1차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어른이 1차 목회 대상이고 어린이와 청소년은 그 다음이라는 인식을 가진 듯 합니다. 이제 한국 교회는 다음 세대를 향해 많은 관심과 기도의 정성을 쏟어야 할 것입니다. 어린이, 청소년, 청년들에게 복음을 전수하고, 그들을 기도의 사람으로 빚으며, 그들의 인격과 삶에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도록 우리 교회는 힘쓸 것입니다.
꿈꾸는 교회 문화
'작은 우리, 큰 예수'의 가치를 꽃 피우기 위하여 우리 교회는 다음과 같은 교회 문화가 자리 잡도록 노력하겠습니다.
1. 전 성도의 대표기도 참여
교회가 지양해야 하는 차별의식 중 하나는 주일 예배 중 대표기도입니다. 많은 교회들이 특정 직분만을 대표 기도자로 세웁니다. 대표 기도는 소정의 자격을 갖춘 누구라도 참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특정인 중심의 예배가 아닌 모든 성도가 참여하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2. '형제님, 자매님' 호칭
지양해야 할 또 하나의 모습은 직분에 대한 그릇된 의식입니다. 우리 한국 장로교는 전통적으로 목사, 장로, 권사, 안수집사, 서리집사를 임명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세우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임을 믿으며 그러므로 각각의 직분을 존중합니다. 그러나 자칫 특정 직분에 대한 호칭이 차별적 분위기를 낳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로보다 목사가 높고, 안수집사나 권사보다 장로가 높고, 일반 성도 보다 안수집사와 권사가 높다는 식의 생각이 발동할 수 있습니다. 이를 고려 하여 우리 교회는 평소 각각의 직분을 존중하는 동시에, 서로를 '형제님(남성), 자매님(여성)'로 호칭 할 것입니다. 담임 목사도 예배시에는 '형제님'으로 불릴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일하는 직분자이기 앞서에, 먼저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형제, 자매임을 기억하기 위함입니다(갈3:26-28). 서로를 형제, 자매라 부르며 하늘 나라 가족의 정체성을 고양하기 원합니다. (나이가 많거나 처음 찾아 온 손님, 그리고 좀 더 예의를 갖추길 원하는 대상에게는 '교우님'이라고 호칭하면 되겠습니다.)
3. 1인 1봉사 (은사 중심의 봉사)
두 가지 이상의 많은 봉사를 감당하느라 분주한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님들이 적잖게 있습니다. 신앙 생활에 여유가 없고 늘 시간에 쫓깁니다. 주일학교 교사도 해야 하고 주방 봉사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는 할 수 있는 한, 성도 한 사람에게 하나의 봉사만을 권유할 것입니다. 다양한 재능이 많은 성도라 할지라도 가급적 두 개 이상의 봉사를 권유하지 않을 것입니다. 일꾼이 시급한 개척교회일 경우, 큰 우를 범할 수 있습니다. 성도를, 나의 사랑이 필요한 귀한 영혼으로 여기지 못하고, 자칫 교회 성장의 도구로만 바라볼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결코 '성장'이 으뜸의 가치가 되어서는 안되며 거룩과 행복이 그 자리를 차지해야 합니다.
4. 성경적 헌금 생활
1) 십일조 정신이 담긴 헌금 : 기독교는 구약의 율법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온전히 성취되었습니다. 다만 우리는 율법 안에 담긴 하나님 나라의 정신! 즉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정신을 고수합니다. 십일조는 구약의 율법으로서 기독교인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강제성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는 십일조의 정신은 꼭 지키고 싶습니다. 구약의 십일조는 수입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며 내 소유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는 신앙 행위였습니다. 그러므로 십일조 정신이란 내 소유의 일부를 하나님께 정기적으로 드림으로써 내가 지닌 모든 소유가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는 태도라 하겠습니다. 우리 교회는 이러한 십일조 정신을 바탕으로 오직 두 가지 헌금, 즉 '교회 사랑 헌금'과 '이웃 사랑 헌금'만 드릴 것입니다. 특별히, 이웃 사랑 헌금은 100% 이웃을 위해서만 사용할 것입니다.
2) 교회 사랑 헌금, 이웃 사랑 헌금 : 우리 교회는 감사헌금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감사한 마음을 교회와 나누고자 한다면 '교회 사랑 헌금'을, 이웃과 나누고 싶다면 '이웃 사랑 헌금'을 하면 되겠습니다. 우리는 또한 부활절, 추수감사절 등 절기 헌금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매 절기 때 마다, 이웃을 섬기려는 마음으로 평소 보다 '이웃 사랑 헌금'에 좀 더 관심을 가지면 될 것입니다. 교회를 위한 특별 헌금, 또는 목적 헌금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성령의 감동에 따라 '교회 사랑 헌금'을 평소보다 좀 더 신경 쓰면 될 것입니다. 직분을 받을 때 감사 헌금도 따로 하지 않을 것입니다. 직분 받는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교회와 나누고 싶다면 '교회 사랑 헌금'을, 이웃과 나누고 싶다면 '이웃 사랑 헌금'을 하면 되겠습니다.
3) 익명의 헌금 : 우리 교회는 헌금하신 분의 이름을 주보에 기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헌금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헌금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헌금이야 말로 율법주의의 어두운 그림자입니다. 다만 헌금의 행방의 명료성을 위해 '헌금 확인 문자'를 개인별로 통보해 드릴 것입니다.
4) 교회의 이름으로 쓰이는 헌금 : 교회를 섬긴다는 명분으로 특정 개인이 담임 목회자에게 거금의 헌금을 드릴 때가 있습니다. 자칫, 목회자와의 이해관계, 또는 개인의 명예나 특정 직분의 임직을 염두에 둔 헌금일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이러한 헌금을 일체 지양할 것이며 한 개인이 목회자에게 거액의 헌금을 들고오지 못하도록 할 것입니다. 헌금은 예배 중에 헌금함에 넣도록 할 것입니다. 헌금은 목회자에게 드리는 것이 아닌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가령, 피아노를 사야 한다면 특정인의 헌금으로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예배 중 그가 헌금한 금액이 포함된 교회의 예산으로 구입할 것입니다. 모든 헌금은 교회의 이름으로 쓰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