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누리는 '믿음이란 복'을 과장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나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덜 실현된 종말론'(그리스도인의 현재 삶에서 얻는 유익을 덜 강조하는)과 '지나치게 실현된 종말론'(그리스도인의 현재 삶에서 얻는 유익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사이에 놓인 복음적인 교회들 안에서 양극단을 오락가락하는 이들을 자주 목격했다. (중략) 복음 안에서 믿음으로 사는 것은 삶의 전부를 지금보다 낫게 만든다. 실질적인 소망이 우리가 느끼는 방식을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영광스러운 현재가 아니라 영광스러운 미래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아버지께 찬양을 드립시다. 하나님께서는 그 크신 자비로 우리를 새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로 하여금 산 소망을 갖게 해 주셨으며, 썩지 않고 더러워지지 않고 낡아 없어지지 않는 유산을 물려받게 하셨습니다. 이 유산은 여러분을 위하여 하늘에 간직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믿음을 보시고 그의 능력으로 여러분을 보호해 주시며, 마지막 때에 나타나기로 되어 있는 구원을 얻게 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지금 잠시동안 여러 가지 시련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슬픔을 당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기뻐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믿음을 단련하셔서, 불로 단련하지만 결국 없어지고 마는 금보다 더 귀한 것이 되게 하시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여러분에게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해 주십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본 일이 없으면서도 사랑하며, 지금 그를 보지 못하면서도 믿으며,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즐거움과 영광을 누리면서 기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믿음의 목표 곧 여러분의 영혼의 구원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벧전1:3-9/새번역)
믿음으로 사는 것은 그리스도의 삶은 확실하고 분명한 소망이 가져올, 표현 못 할 기쁨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우리가 미래의 천국에서 누릴 완벽한 건강, 거룩, 행복을 현재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페이스북에 게시물을 올릴 때나, 인생에서 죄의 피해 또는 창조의 어그러짐으로 몸부림치는 신자들을 상담할 때 과장을 피하라. 우리는 새창조가 완성된 후에야 누릴 수 있는 수준의 변화를 약속하고 싶은 유혹을 받을 수 있다. 물론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겪는 모든 상황을 더 낫게 바꾼다. 그러나 살면서 짊어지는 짐들, 즉 정신적인 질병과 중독과의 몸부림, 아픔과 장애를 안고 사는 삶, 사랑 없는 결혼이나 반항하는 자녀에 대한 인내, 자기중심주의, 시기, 허영, 탐욕, 자만, 분노와의 싸움 등은 죽는 날까지 우리 곁에 남아 있을 것이다. 물론 복음의 관점으로 이런 짐들이 가벼워지고 성령님의 도움으로 상황이 나아질 수는 있지만 말이다. (중략) 우리는 위로가 되는 상황을 약속할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을 통해 점차 변화되도록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님이 우리를 도우실 거라고 확신을 줄 수 있다. 하지만 현재 가능한 것을 과장하지 않도록(그래서 사람들이 환면을 느끼지 않게), 천국에서 하나님과 누리는 놀라운 삶을 덜 강조하는 일이 없도록(그래서 사람들이 포기하지 않게) 주의하자. 나는 수년간 헤로운 중독자를 상담한 적이 있다. 나는 그에게 죄로부터의 완전한 구원을 약속하는 것 외에 헤로인 중독으로부터의 완전한 해방을 약속하지 않도록 신중해야만 했다. 이런 약속이야말로 중독이다. 나는 그에게 약속할 수 있는 것, 즉 예수님을 통해 죄로부터의 구원과 천국의 평안을 약속했다.
[나의 생각]
하나님의 나라는 그리스도의 재림 이후, 미래에 완성될 나라이며,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가 이루어지는 나라이다(종말적 하나님 나라). 그 나라에서는 어떠한 죄도, 불순종도, 악도, 고난도, 아픔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이 땅을 살아가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일부분’ 누리게 하신다(현재적 하나님 나라). 이는 고통 가득한 이 세상을 사는 당신의 자녀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이다.
이 땅에 왜, 죄와 악과 고통이 존재하는지를 불평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아직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의 일부를 누릴 수 있음에 대하여 감사해야 한다. 100% 완전한 순종과 행복은 아니지만, 이 땅에는 분명 부분적인 순종과 행복이 있다. 하나님의 자녀는 100% 순종과 100% 행복에 대해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부분적인 순종과 부분적인 행복에 감사하는 존재이다. 그리고 100% 순종과 100%의 행복을 소망하는 존재이다.
50%의 순종과 50%의 행복은 하나님 나라를 앞당겨 누리는 것이다.
50%의 불순종과 50%의 불행은 하나님 나라를 향한 소망을 위해 남겨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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